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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07.28 03:03 | 수정 : 2012.07.28 10:43
[중국에서 난 이렇게 가혹행위 당했다… 3인의 증언”]
[북한인권운동가 최영훈씨]
계속되는 구타 못이겨 유리창 깨 자해 시도… 귀국후 정신분열 판정… 수개월간 정신과 치료
[북한정의연대 정 베드로 목사]
한달 1~2번밖에 햇볕 못봐… 종일 가부좌 강요… 18개월간 한국영사 두 번 와… 美는 매달 면회
[영화 ‘크로싱’ 실존인물 유상준씨]
공안 4명이 2개조로 24시간 내내 구타… 무슨 이유로 잡혀갔는지 지금도 몰라

북한인권운동가 최영훈(49)씨는 27일 본지 인터뷰에서 “김영환씨가 중국 공안 당국으로부터 전기고문을 받았다는 기사를 보고 눈물이 났다”면서 “내가 중국 감옥에 수감돼 있을 때 중국 죄수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한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997년부터 중국에서 중장비업을 하던 최씨는 탈북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이들의 한국행을 돕기 시작했다. 최씨는 2003년 1월 19일 중국 산둥(山東)성 옌타이(煙臺)항에서 탈북자 80여명의 한국과 일본 입국을 시도하다 중국 공안에 체포돼 구치소에 수감됐다. 최씨는 다리와 팔이 의자에 묶인 채 중국 공안의 조사를 받았다. 그는 “조사원들이 ‘사실대로 얘기하지 않으면 죽이겠다’ ‘북한으로 넘겨 버리겠다’ 등 끊임없이 협박을 했다”고 했다.

구치소에서 11개월 동안 있었던 최씨는 이후 감옥으로 옮겨져 2006년 11월까지 복역했다. 최씨는 “수감 기간 중 마지막 3개월은 지옥이었다”고 했다. 그는 “아프지도 않은데 감옥 안에 있는 병원으로 끌고 가더니 주사를 놨다”며 “정신이 몽롱해져 있는데 갑자기 죄수들이 들어와 나를 죽도록 때렸다”고 했다. 최씨는 “감옥에 있을 때 중국 인권 문제를 계속 비판했는데 이를 싫어했던 교도관들이 시킨 일이 분명하다”고 했다.

그는 보름 동안 다른 죄수들의 구타가 계속되자 병원 유리창을 깨 자해를 시도했다. “이렇게 맞을 바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그는 “다시 병원에서 감옥으로 옮겨져 9명의 죄수와 함께 지냈는데 이들이 돌아가면서 때렸다”며 “석 달 가까이 맞으니 제정신이 아닌 상태가 됐다”고 했다. 86㎏이었던 그의 몸무게는 50㎏으로 줄었다.

그는 2006년 11월 귀국한 후 병원에서 정신분열 판정을 받고 수개월 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또 단기 기억상실증도 겪었다.

북한정의연대 대표 정 베드로 목사는 27일 본지 인터뷰에서 “중국 감옥에 갇혀 있을 당시 한 달에 한두 번밖에 햇볕을 보지 못했다”며 “(햇볕 부족으로 인한) 비타민D 결핍으로 피부가 쪼그라들더라”고 말했다. 또 “온종일 가부좌로 앉아있도록 강요받았는데 한 시간에 한 번만 다리를 펼 수 있었다”고 했다.

정 목사는 2003년 탈북자들의 한국행을 돕다가 베이징에서 중국 공안에 체포된 뒤 지린성 옌지(延吉) 감옥에서 1년 반 동안 구금 생활을 했다. 죄목은 ‘타인 비법(非法) 월경 방조죄’였다.

중국 공안은 조사 초기 3일 동안 잠을 재우지 않았다. 책상에 엎드리지도 못하게 했다. 옆방에서 고문당하는 소리를 들려주며 “협조하지 않으면 개죽음을 당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정 목사의 고초는 옌지 감옥으로 이감된 이후 더욱 심해졌다. 변호사 접견 및 외부 연락은 일절 금지됐다. 좁은 감방에서 속옷 하나만 입고 새우잠을 잤으며, 식사도 하루 두 끼 옥수수떡이 전부였다. 정 목사는 “햇볕도 없는 감방에 하루 내내 꼼짝 못하고 앉아 있는 게 최악의 ‘고문’이었다”고 했다. 햇볕도 보고, 몸도 움직일 수 있는 강제 노역이 오히려 부럽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그는 “구금 1년 반 동안 우리 외교부 영사가 찾아온 것은 처음 잡혔을 때와 성탄절, 딱 두 번”이라고 말했다. 반면 미국 영사는 매달 찾아와서 구금돼 있는 자국민을 면회하면서 중국 측의 가혹 행위 여부 등을 확인하더라고 정 목사는 전했다. 그는 “매달 가족 소식도 접하고, 잡지도 받아서 읽는 미국인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이날 주한 중국 대사관 앞에서 “중국 정부는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씨에 대한 전기 고문 등 인권침해를 사죄하라”고 요구했다.

“중국 공안에 붙잡힌 이유가 뭔지도 모른 채 24시간 동안 주먹과 발로 두들겨 맞았습니다.”

탈북한 부자(父子)의 비극을 다룬 영화 ‘크로싱’의 실존인물인 유상준(49)씨는 12년 전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정착했다. 그는 27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3월 김영환씨가 중국 공안에 잡혔다는 보도를 보자마자 ‘두들겨 맞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유씨는 “나도 작년 5월 초, 북·중 접경지역에서 탈북자 지원활동을 하던 도중 중국 공안에 체포돼 25일간 강제 구금된 뒤 추방당했다”고 했다.

그는 “당시 옌볜(延邊) 조선족자치주의 허룽시(和龍市)에 용무가 있어 갔는데, 숙소로 들어가는 길에 사복을 입은 건장한 사내들이 나를 붙잡아 무작정 인근 파출소 조사실로 끌고 가 때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무슨 혐의로 맞는지도 몰랐고, 그들이 공안이라는 것도 조사 도중에야 알게 됐다”고 했다.

유씨는 “철제 의자에 나를 앉게 하더니 손발을 뒤로 묶었고, 가슴에는 널빤지를 대고 줄을 묶어 상체를 단단히 고정시킨 뒤에 주먹과 발로 온몸을 가격했다”며 “4명이 2명씩 조를 이뤄 2시간마다 교대를 해가며 24시간 구타를 했고, 중국에 들어와 활동하는 탈북 지원 활동가의 실명과 가명, 활동 지역을 모두 실토하라고 강요했다”고 말했다.

중국 공안은 유씨에게 휴대전화가 걸려오면 옆에서 대화 내용을 엿들었고, 통화가 끝나면 “전화를 건 사람의 신상을 모두 말하라”고 했다. 유씨는 “내가 탈북자 지원 활동을 했다는 뚜렷한 물증이 나오지 않자, 결국 25일 만에 풀어주고 추방했다. 아직도 내 혐의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했다.

그는 “중국 공안은 나를 풀어주면서 ‘한국에 돌아가서 별일 없었다고 해라. 소란 피우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