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구출할 수 있었던 탈북자들의 증언입니다. 더 많은 탈북자들을 구출할 수 있도록 협력하고 싶다면, 우리 단체에 기부해주세요: http://www.justice4nk.org/support/
 

intro

저는 2005년도에 북한을 탈출하였으나 중국남자에게 팔려서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의 신고로 중국경찰에 체포되어 북한으로 북송당하였습니다. 온성 노동단련대로 이관되었는데 그당시뱃속에 아기가 있었습니다. 임신상태에서무거운 돌을 들고 뛰어다니도록 하는 강제노동과 폭력으로 결국 5개월이 채 안된 태아는 유산되었습니다. 노동단련대 강제복무를 마치고 중국으로 재탈북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시 인신매매범들에 의해 중국남자에게 팔렸고 어린 딸을 낳아 기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임신을 하였습니다. 이번에 또 중국 공안에 체포되면 북한으로 강제송환되어 다시 강제노동과 강제낙태를 당하게 됩니다. 저는 지금 중국공안의 체포를 당할까봐매우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저를 제발 한국으로 갈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No1     No2

임애숙 (44세) & 손양미 (딸.9세)

저는 중국에서 강제북송 경험이 다섯번 있습니다. 다섯번째 체포되어 북송 되었을 때는 보위부에서 고문을 받고 교화소(감옥)로 이동 중에 탈출을 할 기회가 있어서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맨 처음에 탈북했을 때는 중국 인신매매범에게 인민폐(RMB) 3천위엔(55만원/KRW)에 팔려갔습니다. 저를 산 사람은 저보다 나이가 적은 중국인입니다. 그 남자는 경제적으로 활동이 없고 무능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안전하게 살수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그냥 그사람과 살았습니다. 그런데 살다가 공안이 쳐들어와서 1년 만에 강제북송을 당했습니다. 처음 탈북을 하였기 때문에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고 다시 탈북하였습니다. 그리고 6개월 만에 공안에 체포되어 또 강제북송을 당했습니다. 그때 김정일의 지시로 대사면(석방)이 있었는데 그때 석방이 돼서 다시 탈북하여 중국에 왔습니다. 그때 임신을 하여 아이를 출산하게 되었고 출산 후 몇 개월 만에 또다시 공안에 체포되어 강제 북송되어 교화소에 가게 되었습니다. 이때 교화소에서의 경험은 참으로 고통스러웠습니다. 그 교화소에서 2년간 수감되었습니다. 하지만 중국에 두고온 간난아이를 놓고 왔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야 하는 강한 의지로 버텨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굶주림과 가혹한 노동과 잔혹한 구타와 가혹행위로 고통스럽게 죽어갔습니다. 1년 반 수감되어 있는 동안 그 감옥에서 300여명에 이르는 죽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살기 위해 일을 열심히 해야 했고 배고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일을 해서 살아남았습니다. 저는 벌레나 개구리를 자주 먹었습니다. 어떤 수감자들은 살기위해 똥까지 먹기도 하였습니다. 석방 후에 탈북을 하여 다시 중국에 있는 딸을 만나기 위해 탈북을 했습니다. 그리고 중국공안에 의해서 다시 체포되어 북송되었습니다. 다행히 중국에서 오래있지 않았다고 해서 처벌이 무겁게 취급되지 않아서 교화소 감옥으로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구류장은 별로 교화소와 차이가 없었습니다. 영양실조로 거의 죽게 되었을 때 석방되어 다시 탈북을 하였습니다. 딸을 만나기 위해서 중국 남편집에서 며칠을 지내는데 다시 중국 공안이 들이 닥쳤습니다. 북한으로 이송되는데 이번에 북한으로 돌아가면 정말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기회를 보다가 보위부의 조사 후에 감옥으로 이송도중에 죽기 살기로 탈출을 감행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중국으로 탈북을 하였습니다. 이제 강제북송당하는 것이 지긋지긋합니다. 남편은 무능력하여 저를 책임지지도 못하고 병에 걸려 지금은 병원에 입원해 있습니다. 지금 집에 중국남편까지 없으니 언제 또 공안이 들어닥쳐 강제북송당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빨리 한국으로 가서 저의 딸과 함께 단 하루라도 마음 편하게 살고 싶습니다. 제발 저의 모녀를 도와주세요!
 

No3

강란희 (35세)

김일성이 사망후 북한이 식량난이 심각한 시절 우리 부모님은 저는 굶어죽지 말라고 중국의 친척에게 저를 보냈습니다. 중국 친척집에서 몇년간 생활하다가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서 부모님과 다시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때도 고난의 행군시기(식량난시기)여서 부모님은 항상 힘이 없고 말라갔습니다. 결국 아버지는 영양부족으로 인해 폐결핵으로 사망하였습니다. 어머니도 아버지의 죽음 후에 항상 우울해하시다가 1년 후에 사망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탈북하여 중국의 친척집에 가게 되었습니다. 중국 친척은 내가 결혼할 나이가 되었다고 중국사람을 소개시켜 결혼을 하였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남자였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아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나름대로 북한에서 산 것보다는 행복하게 살려고 열심히 가정생활을 잘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살면서 남편이 이미 결혼을 한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진짜 부인은 다른 나라에서 가서 사업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것입니다.저는 정말 놀랐고 남편이 너무 미웠습니다. 그래서 임신한 아이를 유산시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낙태를 하기 위해서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기도 하고 약을 먹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집을 가출하여 어느 조선족 식당에 들어가서 일을 했습니다. 이렇게 불안하게 사는 가운데서도 아이는 태어났습니다. 지금은 마음을 고쳐먹고 나의 자식으로 인정하고 잘 키우게 되었습니다. 낙태를 하려고 했던 그때를 생각하면 아들에게 참으로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이제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가 되었는데 중국에서는 호적이 없기 때문에 아이가 학교에 갈 수 없는 상황입니다.※아들 :김영혁(8세) 아이를 다시 친척집에 맡겨두고 우선 저부터 한국에 먼저 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다시 우리 아이를 한국으로 데려가고 싶습니다. 중국에서 언제까지 불안하게 사는 것이 힘듭니다. 도와주세요.
 

No4

장성혁 (18세)

아버지는 탄광에서 노동자로 살다가 몸이 약해져서 집에서 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집에 양식은 없고 집 가구들은 다 팔아서 더 이상 살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중국에서 몰래 물건들을 가져와서 시장에다 물건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도 함께 밀수를 하면서 장사를 하였는데 사기를 당하여 빚을 많이 지게 되었습니다. 결국은 어머니가 빚독촉에 시달리다가 가출을 하였고 지금은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더 이상 북한에 살수가 없다고 판단하여 저를 데리고 중국으로 탈북을 하였습니다. 조선족마을과 가까운 산속에서 처음에 아버지와 살면서 저녁이 되면 조선족 마을과 교회에 가서 도움을 받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도움으로 시내로 나와서 일당을 받고 조선족 식당에서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는 도중에 중국의 탈북자 색출기간에 아버지가 갑자기 식당에서 체포되어 북송을 당하였습니다. 저는 다행히 조선족 집사님의 집에서 피해 있었다가 살아날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 저는 홀로 남아 있게 되었고 이곳도 한시라도 불안하여 살수가 없습니다. 한국에 가서 공부도 하고 돈도 벌면서 다시 부모님을 찾고 싶습니다. 저를 도와주세요.